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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실사 영화 시리즈로, 배트맨 영화 중에서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다크나이트 3부작이다. 작품의 제목은 배트맨 비긴즈, 다크나이트, 다크나이트 라이즈로 구성되었다. 배트맨의 탄생과 역경 및 고난 이후 재기에 성공하며 완벽히 퇴장하는 모습까지 탄탄한 구성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특히 세 편 중에서 두번째 작품인 '다크나이트'의 명성은 가히 전설적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개인적으로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1989)'을 또 재미있게 봤던 입장에서, 똑같은 빌런이지만 다른 배우들의 연기로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는 잭 니콜슨, 놀란의 다크나이트에서는 히스 레저) 스크린에 나타나는 '조커'의 모습 또한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또한 세 작품의 주인공인 배트맨을 연기한 크리스찬 베일은 이를 통해 일약 스타로 거듭났으며, 시리즈물 영화들이 그렇듯 주요 인물들의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꾸준히 등장하여 작품의 시작과 대미를 함께 장식하였다.

줄거리

고담 시 안에 위치한 웨인 저택의 귀한 아들인 브루스 웨인과 소꿉친구 레이첼 도스가 어린 시절, 함께 저택 안에서 노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브루스는 레이첼을 놀리기 위해 낡은 우물에 숨어 들었다가 떨어지고 마는데, 그 때 우물 안에 있던 박쥐들이 그를 덮치면서 브루스는 박쥐에 대한 공포가 생기게 된다.

이후 몸이 나아진 브루스는 가족들과 함께 고담 시내로 오페라를 보러 나가게 되는데, 오페라 중 박쥐가 나오는 대목에서 우물 속 겪었던 박쥐 공포에 대한 트라우마가 떠오르면서 부모에게 나가기를 청한다. 여전히 오페라가 상영 중인지라 셋은 뒷문을 통해 어두컴컴한 골목으로 나서게 되는데, 좀도둑이 잠복하고 있다가 그들의 귀중품을 강탈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만다. 홀로 남겨진 브루스는 그렇게 고아가 되는데, 아버지가 운영하던 웨인 기업은 경영진이 대신 맡고 있기로 하고 그는 성인이 될 때까지 고담을 떠나 공부를 하고 오게 된다.

성인이 된 후, 고담 시로 돌아온 그는 부모를 죽게 한 좀도둑에게 복수하고자 했으나 도심 속 범죄의 권력을 가진 마피아 팔코니가 재판 과정에 개입하여 먼저 범인을 암살해버린다. 이에 직접 팔코니를 찾아가 대면하지만 돌아온 것은 모욕과 구타 뿐, 결국 고담 속 범죄자들의 속성을 먼저 이해하고 이를 바로잡겠다는 결심으로 종적을 감추고 히말라야에 위치한 '그림자 동맹'과 그 수장 '라스 알굴'의 밑에서 전투 기술을 익히게 된다.

고담으로 돌아온 그는 웨인 기업으로 돌아와서 응용과학부처를 통해 첨단 장비를 지원받아 배트맨의 복장과 각종 무기 및 장비를 개발하고 이를 이용하여 배트맨으로 탄생한다. 비긴즈에서는 팔코니와 손을 잡은 크레인 박사, 도시를 일부러 부패하게 만들고 최후에는 몰락시키려고 계획하였으며 결국 이를 실행하러 돌아온 라스 알굴과 혈투를 벌이게 된다. 다크나이트에서는 도시를 거대한 혼란에 빠뜨리고 레이첼을 죽게 하며, 도시에서 가장 정의로운 검사로 평가받던 하비 덴트를 타락한 투 페이스로 만드는 조커와 싸운다. 마지막으로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캣우먼 셀리나 카일과의 갈등, 웨인 기업을 무너뜨리려 하는 이사회 임원 대거트와의 갈등, 그리고 이 모든 갈등의 흑막을 조장하는 그림자 동맹 용병 베인과 라스 알굴의 딸 탈리아까지 복잡하고 아주 거대한 전쟁이 벌어진다.

이모저모

히어로 영화라는 한 장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영화의 귀감이자 목표' 정도의 평가를 받아야 마땅할 정도로 그 작품성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작품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히어로 영화 산업의 선두 주자로 가장 손꼽히는 마블조차 넘지 못한 DC 코믹스의 불세출 명작이며 시간이 꽤 흐른 영화임에도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이다.

주인공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 활동하면서 겪는 시련과 고난, 성장과 부활 등을 담기 위해 그와 대립하는 빌런들과 갈등하는 인물들 또한 무수히 많이 등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안에서도 기존의 영화들 속에서 자주 보이던 선과 악의 명확한 구분과 대립을 넘어서 각자가 가진 명확한 개성과 오묘한 철학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에게 놀라운 재미를 준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가장 명작이라 평가받는 트릴로지 중 2편 '다크나이트' 속 조커와의 대립 구도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며, 이 과정에서 개인적인 사건과 사사로운 감정에 영향을 받고 있는 불안정한 한 인간의 형태로 시작했던 배트맨의 영웅 활동이 그 경지를 넘어 진정한 초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3편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믿었던 이에 배신을 당하고, 허리가 부러지고 지하 감옥에 갇히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끝내 다시 일어서는 영웅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색다른 카타르시스를 줄 것이다.

우리는 왜 넘어지는 걸까? 그렇게 우리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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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홀랜드의 '마블 스파이더맨 3 : 노웨이홈'의 예고편 동영상이 굉장한 주목을 받고 있다. 본래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굉장히 매력적인 영웅이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다양한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했고 서로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살펴보는 것도 관객들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요소가 아닐까 싶다. 그 중 스파이더맨이라는 영웅을 가장 먼저 대중에게 각인시킨 시리즈가 바로 샘 레이미 감독의 연출, 토비 맥과이어 주연 3부작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이다.

줄거리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의 줄거리는 세부적인 내용 정도만 다를 뿐, 천재이지만 인간적으로는 평범한 피터 파커가 슈퍼 거미에게 물려 초인적인 힘을 얻는다는 전체적인 흐름은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후 앤드류 가필드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마블 유니버스의 스파이더맨은 나올 때부터 이미 스파이더맨이 되어 있었기에 그 과정이 담겨있지 않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원작 만화와 달리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에서 피터 파커의 상대 히로인이 그웬 스테이시가 아닌 메리 제인으로 시작한다는 것, 거미줄을 발사하기 위한 웹 슈터를 개발하지 않고 손목에서 바로 거미줄이 발사된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또 원작에 가장 충실했다고 여겨지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개봉된 2012년보다 무려 10년이나 이전인 2002년에 트릴로지 시리즈가 시작한 것을 생각하면, 기술적으로나 영상미적으로 부족할 수 있음에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명작으로 평가받을 만큼 작품을 스크린에 풍부하게 담아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모저모

특히 이 영화를 통해 일약 스타가 된 토비 맥과이어의 공로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뛰어난 연기력과 출중한 외모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의 스파이더맨이라고 평가하는 팬들마저 있을 정도로 여전히 그 명성과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영화 초반부의 그 소위 '찐따' 연기를 잊을 수가 없다. 어쩜 그리 잘 표현할 수 있는지.

피터 파커의 소꿉 친구이자 연인으로 등장하는 메리 제인 왓슨, 커스틴 던스트 역시 빼면 섭섭하다. 특히 트릴로지 시리즈 중 가장 명작이라 불리는 '스파이더맨2'가 끝날 무렵쯤,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 직전 도망쳐 피터 파커에게 뛰어가는 그 모습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이 있다면 바로 다름 아닌 주인공 피터 스스로가 계속해서 느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다. 1에서는 자신이 영웅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죽은 삼촌의 유언과도 같았던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의 무게를 느끼고,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철저히 스스로를 숨긴다. 짝사랑해 마지 않던 메리 제인의 고백마저 차버릴 정도로 스스로를 희생해가면서. 그렇게 힘들어 하던 중 2에서는 결국 그간의 짓눌렸던 압박이 터져 서서히 자신의 힘을 잃어가는 지경에 이르다가, 결국 메리 제인이 눈앞에서 납치되고 곤경에 처하는 모습에 분개하여 다시 자신의 힘을 되찾고 그녀를 구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힘도 되찾고 남몰래 짝사랑했던 메리 제인의 사랑마저 얻으며 행복한 나날만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으나, 심비오트가 등장하여 슈트와 마음을 타락시키면서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사람으로 변하는 피터. 주위 사람들을 모두 다치게 하고 상처를 주면서 악당이 되어가는 듯 하였으나, 그 죄책감과 후회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과오를 씻기 위해 심비오트를 찢어버리게 된다. (이것이 결국 또 다른 빌런 베놈의 탄생을 만들게 되긴 하지만) 일련의 과정에서 피터는 '피터 파커로서의 삶'과 '스파이더맨으로서의 삶'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삶에서 스스로의 정체성과 언행 및 태도에 갖은 시행착오를 겪고, 이를 해결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역대 스파이더맨 시리즈 중 피터의 숙모인 메이 파커의 역할이 아주 돋보였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피터의 정신적 지주이자 버팀목이 되어준 인물이며, 그가 혼란스러워 하고 나아갈 길을 모를 때 그 길을 제시하고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었다. 특히 피터가 능력을 잃고 스스로 잠시 스파이더맨을 그만두었을 때, 은근히 그가 스파이더맨임을 아는 눈치이면서 해 주는 조언은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대사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영웅이 있다고 믿는단다. 우릴 정직하게 하고, 힘을 주고, 고귀하게 만들며 마침내 죽는 순간을 자랑스럽게 만들지. 그렇기에 가끔은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단다. 그게 꿈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야. 헨리에게 스파이더맨은 그런 사람이야. 그래서 그가 어디 갔는지 궁금한 거고. 녀석에겐 그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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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역대급 영화이자 나의 인생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을 영화, 인셉션이다.

사실 영화가 처음 개봉했을 당시에는 세간의 주목과 찬사들이 가득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설명해주실 분' 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줄거리

타인의 꿈에 들어가서 그의 생각을 훔치는 일을 하는 특수 요원 코브.

코볼 공업의 확장 계획에 대한 사이토의 계획을 바꾸기 위해서 자신의 동료인 아서, 내쉬와 함께 그에게 접근한다. 그러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고 도주하던 도중 내쉬가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고 사이토에게 그들을 팔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이토는 자신의 생각을 훔치려던 코브와 아서에게 오히려 '인셉션'을 제안하는데, 이는 자신의 경쟁사 피셔-모로우 그룹의 후계자 로버트 피셔가 스스로 회사를 해체하도록 생각을 심는 것이었다.

고민하는 코브에게 사이토는 일을 해결하면 집에 온전히 돌아가 아이들을 볼 수 있게 해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고, 이에 코브는 주저없이 자신의 동료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코브는 자신의 아내인 멜을 살해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배를 받고 해외 도피 중에 있었기에, 사이토의 제안에 밑져야 본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시 인셉션의 표적이 될 로버트 피셔에 대한 사전 조사를 시작하고, 동료인 아서를 포함하여 꿈의 설계자가 될 아리아드네와 위조꾼이 될 임스, 뛰어난 약제사 유서프와 함께 팀을 구성하여 작전에 들어가게 된다. 사이토의 엄청난 재력을 이용해 항공사를 미리 인수해두고, 항공기를 이용하는 로버트 피셔에게 자연스레 접근하여 수면제를 먹인 뒤 그의 꿈 속으로 들어가는 작전이었다. 게다가 한 단계의 꿈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닌, 그 꿈 속에서 또 다른 꿈으로, 또 다른 꿈으로 세 번에 걸쳐서 아주 깊은 단계까지 도달하여 진행해야 하는 거대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예상 외로 피셔는 꿈의 추출로부터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훈련을 해둔 상태였기에 그의 꿈 속에서 팀원들은 난관에 봉착하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함께 꿈 속으로 들어간 사이토가 총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하고 코브의 무의식에서 나타나는 멜의 방해 등이 겹치면서 작전은 더욱 어렵고 힘들게만 흘러간다. 너무 깊은 꿈이었던 나머지 작전 중에 죽게 된다면, 꿈의 가장 깊고 원초적인 무의식 상태인 림보로 떨어지게 된다는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작전 중 가장 깊은 단계의 꿈에서 결국 진작에 총을 맞았던 사이토가 사망하여 림보로 떨어지게 되고, 피셔마저 인셉션이 끝나기 직전 코브를 방해하던 멜의 총에 맞아 림보로 떨어지면서 실패로 돌아갈 뻔 했으나 코브와 아리아드네가 함께 림보로 직접 들어가 그 안에 있던 멜을 만나고 함께 있던 피셔를 찾아내게 된다. 피셔와 아리아드네는 림보에서 함께 3단계의 꿈으로 돌아와 아직 완성되지 못한 인셉션을 끝내게 된다. 코브는 자신이 그동안 갖고 있던 후회와 죄책감을 멜에게 고백하면서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무의식에 남아있던 멜을 보내준 뒤 림보 안의 다른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을 사이토를 찾아 함께 현실로 돌아온다.

모든 일이 끝나고 사이토는 전화 한 통으로 약속했던 코브의 누명을 풀어주고, 코브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자신의 아이들을 보고 그들을 끌어안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모저모

사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감을 잡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만큼 이 영화의 전개와 구조는 복잡하며 각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의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심지어 주인공 코브 역할을 맡았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조차 아직도 인셉션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을 정도이다. 아직까지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만.

개봉 당시 영화의 내용이 난해하고 결말조차 시원하게 떨어지지 않았던 터라 많은 영화팬들과 관객들이 앞다투어 해석과 분석글을 내놓을 정도였고, 영화의 소재였던 꿈과 인셉션 때문에 '자각몽', '루시드드림'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10년이 지난 뒤 영화관에서 재개봉을 했을 때조차 많은 사랑을 받았고 나도 이건 꼭 다시 봐야겠다고 결심하여 스크린으로 다시 볼 정도로 사랑받은 영화이다.

멜은 코브의 아내이자 그의 무의식 속에 계속해서 남아있는 그의 죄책감이라고 할 수 있다.

멜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코브가 그녀의 마음에 '내가 있는 이곳은 현실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심어버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죽는 것인데, 그러한 생각을 무의식의 림보 속에서 멜에게 심어버림으로써 멜이 현실로 돌아와서도 그러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렸기에 코브의 죄책감이 계속해서 남아 스스로를 괴롭힌 것이다. 이 때문에 코브가 남의 마음에 생각을 심는 인셉션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고, 또한 자신이 작전을 하던 중에 계속해서 무의식 중에 남아 있던 멜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피셔를 찾기 위해 다시 한번 떨어졌던 림보에서 그는 멜을 만나 자신의 모든 후회를 털어내고 그녀를 보내주었다. 이는 스스로 죄책감을 씻고 미래로 나아가는, 코브의 성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가르쳐주는 하나의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자신의 잘못으로 과오를 저지를 수 있지만 이를 씻기 위해 스스로를 용서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얼마나 멋진 일이 아니겠는가.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이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토템이라는 것이 나온다. 코브의 경우 사진에 나오는 모양의 팽이였는데, 꿈에서는 이 팽이가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가고 현실에서는 돌아가다가 멈추기 때문에 이를 통해 코브가 자신이 있는 곳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있다고 나온다.

그런데 결말 부분에서 코브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이 팽이를 돌려놓고, 아이들의 얼굴을 보자 달려가 그들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카메라가 점차적으로 팽이를 클로즈업하는데, 팽이는 계속 돌면서 마치 넘어질 듯 흔들흔들, 그러다가 영화가 딱 끝이 나 버린다. 정말 억 소리 나오는 결말이 아닐 수 없다. (관객들 모두가 이 부분에서 마치 서로 약속했다는 듯이 다들 짧은 탄식 소리를 냈다는 후문이.)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미공개 완결 부분이 유튜브나 다른 영상 매체들을 통해서 나오면서 '실제로 팽이가 넘어졌고 이는 현실이었다!' 완벽한 결말로 해결됐지만, 당시에는 열린 결말이니 안 넘어졌을 거라느니 코브는 림보에서 못 빠져나왔을 거라느니 정말 많은 해석과 말들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전 중에 사망하여 림보로 떨어진 사이토의 모습이다.

그는 자신이 꿈에 있다는 것을 망각해버려 폭삭 늙어버린 모습인데, 그를 찾기 위해 림보를 헤맨 코브가 그와 함께 나누는 대화는 가히 인상적이다.

우리 함께 돌아갑시다, 믿음을 가져봐요. 그럼 우린 다시 젊어질 수 있어요.

이것이 꿈이라는 믿음을 갖고 스스로에게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용기. 인셉션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교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스스로를 믿고 자신의 선택에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삶이란 얼마나 멋진가! 사실 이는 사이토가 코브에게 헬기 안에서 인셉션과 함께 아이들을 볼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하면서 그에게 한 말이다.

믿음을 갖는 삶이란 얼마나 값지고 멋진 것인지.

스포일러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원치 않으신 분들을 위해 강력히 주의합니다.

 

로맨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영화, 500일의 썸머이다.

처음 이 영화가 개봉하고 한창 광고할 때였나, 재개봉을 한번 하고 알려줄 때였나.

그 때 특별한 문구를 본 기억이 난다.

 

'우리 모두는 썸머와 사귄 적이 있다'

줄거리

영화에서는 톰이라는 남자와 썸머라는 여자가 나온다. 톰은 운명적인 사랑과 하늘이 맺어주는 인연을 믿는 낭만적인 남자이며, 썸머는 정반대로 현실적이고 오히려 사랑에 대해 비관적이기까지 한 여자이다. 이들은 카드 문구를 작성하는 회사에서 동료 직원으로서 만나게 된다. 회식 자리에서 좀더 길게 대화를 할 기회가 찾아오면서 그들은 점차 서로 알게 되고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톰과 편안하고 부담없는 관계를 바라는 썸머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갈등을 넘어서기란 쉽지 않은 법. 결국 톰과 썸머 둘다 서로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워하며 끝내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 우습게도 운명적인 사랑만 믿었던 톰은 자신이 가려고 한 회사의 면접을 똑같이 보러 온 새로운 여자 어텀에게 먼저 데이트 아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사랑에 현실적이고 비관적인 시선을 갖고 있었던 썸머는 운명과도 같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서로 힘들게 연애했지만 그동안의 경험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각자가 증명한 셈이지 않을까.

이모저모

내가 처음으로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나오는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지,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문장이라던가, 시간의 순서대로 내용이 흘러가는 것이 아닌 500일 중 어느 특정한 날이 먼저 소개되고 그 날의 사건이 나왔다가 그보다 한참 옛날 또는 미래의 사건이 나타나는 식의 전개라던가. 솔직히 '내가 머리가 나쁜 건가, 왜 나는 공감이 안 되지'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살아가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 다양한 경험들은, 이 영화가 더욱 감명 깊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이 영화는 철저히 톰의 입장에서 본 썸머의 이야기이다. 내가 만나는 여자와 나 사이의 공통점이 많다는 것에 환호하고, 그녀와 내가 만난 것은 운명이나 다름이 없는 것 같고, 하늘이 맺어준 커플인 것처럼 그녀가 특별한 사람으로만 느껴지는 톰의 모습이 마치 그때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커플끼리나 할 행동을 하면서도 '우리는 연인 사이야'라고 못 박아두지 않고 애매하게 행동하면서 온갖 애를 태우는 썸머가 곧 헤어진 그녀의 모습이었다.

연애 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어떠한 관계 속에서도 헤어짐이나 단절이라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의 잘못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둘다 잘못하는 부분이 존재하고 이를 서로 맞출 수 없었기에 생겨나는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My name is 'Autumn'. (제 이름은 '가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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